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에 기대는 정치인이라는 평판은 절반만 맞다. 박 전 대표는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아버지의 후광 없이도 연이어 강력한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국 관건은 본인에게 유리하게 짜놓은 프레임에서 스스로 아이콘이 되어 대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박 전 대표는 매번 고비를 넘지 못했다.

프레임 설정에는 탁월하지만, 아이콘으로 선택받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박 전 대표 삶의 궤적과 무관치 않다. 박 전 대표는 1998년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거물’이었다. 그는 정치 입문 2년 만인 2000년에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을 뚫어내며 스타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라면 정치권 안에서든 밖에서든 누구나 겪었던 ‘거물로의 성장 드라마’가 유독 그에게는 빠져 있다. 노무현의 ‘정치 개혁’이나 이명박의 ‘경제’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될 만한 자기 브랜드 형성 과정이 생략된 셈이다.

 

〈그림 1〉 2004~2005년 아버지 키워드

 


그래서일까. 박 전 대표의 담론 구조에서는 자신을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로 내세울 때 유독 아버지를 호출하는 경우가 잦다. ‘드라마’가 빠진 빈 공간을 ‘아버지’로 메우는 셈이다. 시대가 어떤 지도자를 원하느냐에 따라 아버지 키워드가 갖는 의미 네트워크도 극적으로 달라진다. 박 전 대표의 담론 구조를 분석할 때 ‘아버지’ 키워드가 가장 흥미롭고 다채로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도 그래서이다.

‘아버지’ 키워드, 시대에 따라 달라져

이번 박근혜 담론 분석에서 제1기에 해당하는 2004~2005년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전성기다. 진보·개혁 진영의 공세가 가장 강한 시절이었다. 보수 정당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박 전 대표는 아버지 문제에 수세적이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림 1〉은 이 시기 ‘아버지’ 키워드로 본 의미 네트워크다. 이 시기의 아버지 박정희는 유신독재 시기 몇몇 국민에게 피해를 준 존재다(남색). 국민에게 빚이 있고 사죄한다고도 했다(초록색). 하지만 친일 문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과거사 법’에 대해서는 불편해한다(남색·초록색). 2004년 7월25일 박 전 대표는 유신 독재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다”라고 밝히면서도, 친일 논란에 대해서는 “내가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라며 선을 그었다. 같은 해 8월13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시절에 여러 피해를 본 것을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림 2〉 2006~2007년 아버지 키워드

 

 

물론 역공도 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통성을 상징한다(붉은색). 국가 정체성이 바로 서면 경제가 성장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이기도 하다(연두색). 대노무현 프레임은 이렇게 아버지 키워드를 통해 강화된다. 또한 독특하게도, 아버지는 2002년 박근혜·김정일 회담에 대한 보수 세력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는 무기로도 사용된다. 아버지 역시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청록색).

이번에는 〈그림 2〉를 보자. 노무현 정부가 힘이 빠지고 한나라당이 지지율 고공비행을 벌이는 가운데, 박 전 대표가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돌입한 2006~2007년이다. 이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수세적 태도는 사라지고, 적극적으로 아버지에게 지도자상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시대 조류가 보수로 흐른다는 자신감이 읽힌다.

아버지는 경제관과 능력,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국민과 민생을 챙긴 지도자다(남색). 이 지도자의 최대 덕목은 역시 경제성장이다(연두색). 존경받을 만한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아버지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와 박근혜 본인과 한 묶음이다(청록색). 즉, 본인이야말로 경제성장의 아이콘이었던 아버지의 계승자다.

아버지와의 동일시, 박근혜의 핵심 전략

2007년은 박 전 대표가 공들여 쌓아올린 경제 프레임이 도리어 자신의 발목을 잡던 시점이다. 한편으로 대(對)이명박 프레임의 단초가 되는 신뢰 담론을 구축해 나가면서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본인을 경제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버지와의 동일시는 박 전 대표의 핵심 전략이자, 이명박이라는 강력한 경제 아이콘에 맞서 동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원이었다.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에서 박 전 대표는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경제를 살려냈는지, 대통령이 뭘 해야 하는지를 가까이서 봤다”라고 말했다. 8월6일 경남 창원 합동연설회에서는 아예 청중을 향해 “제가 누구의 딸입니까?”라고 묻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 직접 보며 자랐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아버지 못지않게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담론에, 박 전 대표는 ‘내 아버지가 해봐서 아는데’ 담론으로 맞선 셈이다. 결국 한나라당과 여론은 ‘아버지의 딸’보다는 ‘주인공 본인’을 경제 프레임의 아이콘으로 택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림 3〉 2008~2010년 아버지 키워드

 

 

이명박 정부 들어 박 전 대표의 담론 전략은 급격한 전환을 겪는다. 경제·투자·감세·성장 담론이 후퇴하고, 복지·행복·삶의 질·신뢰·원칙이 키워드로 부상했다. 아버지 키워드의 의미 역시 따라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아버지’를 동원하는 맥락이 또다시 달라진 것이다. 〈그림 3〉이 그 결과다. 2008~2010년 사이의 ‘아버지’ 의미 네트워크다. 〈그림 2〉에서 핵심이던 경제와 성장 키워드는 아예 증발했다. 대신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발전시켜 미래를 여는 지도자로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는다(연두색). 행복·소외 계층·공동체·교감 등, 이전까지만 해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울려 보이지 않던 키워드가 아버지 네트워크에 속속 등장했다(남색). 이 시기의 아버지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강인한 지도자라기보다는, 국민과 교감하고 신뢰를 주며 헌신하는 지도자로 의미가 바뀐다.

복지 아이콘, 부모가 만들어줄까?

박정희 전 대통령 91회 생일인 2008년 11월14일 경북 구미 생가에서 박 전 대표는 “이제 문화가 국력이고, 지난 시절 우리의 성장이 하드웨어적이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적이고 문화적이어야 한다”라고 ‘말랑말랑한 단어’를 총동원했다. 이 역시 기존 담론 전략에서 아버지와 짝을 지어 나오는 말이 전혀 아니었다.

그림 아래쪽 초록색 의미 블록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의 대이명박 프레임 핵심 키워드인 ‘복지국가’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국모 이미지가 강한 어머니 육영수 키워드와 함께다. 2009년 5월 스탠퍼드 대학 연설 이후, 박 전 대표가 복지 담론을 가장 집중적으로 쏟아낸 기간이 박정희 추도식(10·26), 박정희 생일(11·14), 육영수 생일(11·29)이 연이어 있는 10~11월이었다. 세 자리 모두에서 박 전 대표는 복지국가를 ‘부모님의 꿈’이었다고 말하며 최대 자산인 부모님을 동원한다.

든든한 유산 상속자의 프리미엄처럼 보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번에도 복지국가라는 본인 프레임에서 정작 자신의 기량으로 아이콘이 되는 길을 찾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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