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는 공화당 소속의 스콧 워커 현 주지사가 지난 2월14일 이른바 ‘예산수리법’의 입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예산 적자를 이유로 각종 비용 절감과 복지 축소를 내세워 법안을 상정한 주지사가 이 과정에서 노조의 단체협상권을 사실상 박탈하려 계획을 세우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에 맞서 노조가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시위대가 주 청사를 몇 주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소방노조, 경찰노조, 하수노조, 도로관리노조, 운송노조 등 수많은 단위노조 또한 시위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켜 다음 달부터 적용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민주당 소속 주의원 14명이 예산법안 정족수를 못 채우도록 위스콘신 주 경계 밖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시위 상황은 점점 장기화됐고, 시위 규모 또한 확대되었다.

이에 대한 공화당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상원에 법안을 먼저 상정하게 돼 있는 절차를 바꾸어 자신들이 다수를 점한 하원에서 먼저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틀에 걸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 행위)를 뚫고서였다. 그로부터 한 달여간 타협 불가와 협상 사이를 오가는 듯했던 공화당은 결국 원래 법안 가운데 정족수를 채워야 하는 예산 부문은 빼버리고, 단체협상권 박탈 부문만 분리해 이를 기습 처리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예산은 구실이고 노동자 세력 약화가 목표였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AP Photo미국 위스콘신 주 청사 앞에서 3월12일 수천 명의 시민이 ‘예산수리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실제로 여러 노조는 상황 발생 초기부터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복지 부담금 확대를 받아들이겠다고 표명했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정작 예산과 관계 없는 단체협상권 박탈을 고집하며 협상을 거부해왔다.

그런데 단체협상권 박탈 법안이 날치기 통과된 뒤 상황은 오히려 새 국면에 들어섰다. 법 절차상 문제로 이 법에 대해 법원이 임시 집행정지 처분을 내린 상태에서 법률무효 소송, 주민소환 운동, (각종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성향 후보 당선 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가두시위 또한 여전히 매주 진행 중이다.

독일과 북유럽계 이민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위스콘신은 미국 중북부 지역에 위치한 인구 570만의 주다. 원래 낙농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교육과 공공 서비스가 경제 기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 세기 전부터 이 지역은 이른바 ‘위스콘신 아이디어’를 행정 규범으로 받아들여왔다. 주립대학에서 수행한 연구는 위스콘신 주의 더 나은 사회제도 및 시민들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정당 후보 경선, 산재보상, 누진세 등 여러 진보적 정책의 산실이 되어왔다.

공화당 장악 지역에 대한 ‘리트머스지’ 구실

ⓒAP Photo스콧 워커 주지사는 노조의 단체협상권을 박탈하려는 법안을 발표했다.
정치적으로 위스콘신 주는 민주당-공화당 지지가 상황에 따라 엇갈리는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주도(州都)인 매디슨이 미국에서 가장 진보 성향이 강한 것으로 꼽히는가 하면 매우 보수적인 농촌 지역이 섞여 있다. 1920년대 미국 진보 정당 운동을 성공시킨 밥 러플렛 상원의원, 1950년대에 유사 경찰국가 상황을 조성한 조 매카시 상원의원을 모두 배출한 곳이 위스콘신 주다. 최근에도 2008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 당선시켰지만,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공화당판 풀뿌리 운동인 티파티 세력이 득세하면서 2010년 겨울 총선에서는 다시 공화당이 상하원과 주지사를 모두 장악한 상태였다. 워커 주지사가 취임하면서 처음 한 일은 고속철과 고속 인터넷 등 연방 지원금에 의해 움직이는 인프라 사업의 백지화, 대기업에 대한 감세 등이었다.

위스콘신의 투쟁이 미국 사회에 함의를 지니는 것은, 이것이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다른 주에 대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는 점에서다. 현재 오하이오 주 등 다른 중부 지역 주정부가 비슷한 방식의 노동권 약화 입법을 추진 중이다. ‘부자 감세’로 악화된 예산 적자를 노동자들 허리띠 조르기와 노동권 약화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수층에 만연한 노조 혐오와 모호한 경제 살리기 구호를 바탕으로, 결국은 모든 노동자의 권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노동권 약화가 공화당에 의해 확산되려는 시기에 위스콘신에서 노·정(勞政)이 격돌한 것이다.

세계화와 아웃소싱이 기본이 된 현재의 미국 경제체제에서 조직화에 의한 노동자 권익 보호가 그나마 가능한 영역은 서비스 부문이다. 그마저도 저임금 이민자의 물결 속에서 영역을 아직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격 요건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교원·경찰·소방관 같은 공공 전문직이다. 위스콘신은 여러 진보적 노동정책 도입의 선봉에 있었으며 특히 공공 노동자 단체협상권을 법제화한 최초의 주로서 상징적 가치가 크다. 나아가 주립대학과 초·중·고교 교원 부문이 주 전체 고용 규모 중 최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공공 전문 서비스 노동의 지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곳을 무너뜨리면 다른 주에서는 승산이 더욱 커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위스콘신 주 노동자 시민의 저항은 공화당의 당초 예상을 가볍게 넘어설 정도로 강력했다. 주지사 측의 발표가 나자 주도 매디슨에서는 지체 없이 교원노조(MTI)와 주립대학 조교노조(TAA) 등이 앞장서서 시위대를 모았다. 교원들을 지지하는 학부모들도 빠르게 대열에 합류했다. 경찰노조와 소방노조는 공화당의 노조 분할 정책에 따라 단체협상권 박탈에서 예외를 인정받았는데도 시위에 적극 합류했다. 독립 방송제작 인력들은 감동적인 취재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뿌렸고, 교수들은 강의실에서 이 문제를 토론 안건으로 활용했다. 현장을 관리하는 경찰 또한 공화당 측의 시위대 체포 요구를 최대한 거부하며 물리적 충돌을 피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 악법 반대 시위 인파는 한때 7만명에 달했다. 보수 풀뿌리 운동인 티파티 진영이 한때 이에 대항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수적으로나 참여 열기로나 열세를 면하지 못했다. 사회적 연대와 자발적 현장 조직화의 힘은 특히 2월14일부터 보름여간 이어진 주 청사 점거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본래 시민들이 주 청사에 모여든 것은 법적으로 보장된 시민 발언 기회를 이용해 시간을 끌자는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이들이 발언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주 청사에 줄을 서서 대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자정을 넘어갔고, 하나둘씩 청사에 아예 눌러앉게 된 것이었다. 다음 날부터 청사 복도에는 사건 상황을 알리고 자원봉사자 시간표를 배분하는 정보 데스크, 양호 구역, 기기 충전을 할 수 있는 미디어룸 등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침낭 등 철야 장비를 갖춘 채 장기 점거에 돌입했다.

주 청사를 점거한 시위대는 나아가 근무표를 짜 ‘우리들의 집(청사)’ 청소와 경비를 분담하고 나섰다. 청사 인근 식당들 역시 협력에 나섰다. ‘이언스 피자’라는 가게는 누구든 전화 또는 인터넷 주문을 하면 청사를 점거 중인 시위대에게 피자를 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시위대에게 피자를 배달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청사 인근의 다른 가게들도 연대의 표시로 지지 포스터를 내걸었다. 유서 깊은 공연장은 하루 저녁 대관 스케줄을 통째로 집회 연설에 기부했다.

시위 와중에 일부 시민들은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지역별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돌며 서명을 받았는데, 4월8일 현재 공화당 의원 8명 중 2명에 대해 소환 서명인 수를 이미 충족시킨 상태이다. 2011년 2월부터 주민소환이 가능해지는 주지사에 대한 사전 서명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5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이변’이 발생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선거 경쟁과 투표율 속에서 당초 유력한 경쟁자 없이 연임이 확실시되던 보수 성향 대법관이 노조의 지지를 업은 신인 후보와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벌인 것이다(당선자를 가리기 위해 재검표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위스콘신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무관심, 겉핥기 내지 아예 왜곡된 상태에 머무르는 듯하다. 한국 언론 대다수는 심층 취재 없이 이를 해외 토픽 다루듯 보도했다. 심지어는 ‘공무원 철밥통 이기주의’를 운운한 〈중앙일보〉 사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진보 진영은 ‘미국에서 노동자 항쟁 발발’이라는 식의 다소 낭만적인 틀에 머물곤 했다. 아랍권에서 발발한 반독재 운동과 묶어 세계적 혁명의 기운으로 이를 포장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위스콘신에서 벌어진 일은 ‘민주화 이후의 사회’에서 노동자·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하나의 모델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독재정권이라는 명확한 적을 상정한 아랍권의 싸움과 달리, 위스콘신의 투쟁은 이미 여러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상태에서 그것을 박탈하려는 주류 정치세력들을 막아내려는 방어전이었다.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단결만큼이나 지역 기반의 공동체적 연대가 중요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에서 노동자·시민의 권리 찾기

정당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우익 세력이 진보적 제도를 후퇴시키려고 할 때 어떤 식으로 맞서야 할 것인가. 그냥 다음 선거에서는 잘 뽑자는 체념으로는 부족하다. 시위를 통한 직접적 의견 표출, 사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교육, 새롭고 오래된 각종 매체를 활용한 종합적 여론 형성이 기본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역 정치행정 단체들과 협력해 각종 소송을 이어가는 법적 행동 역시 중요하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소송 비용 모금이나 증언 등에 참여하는 것이 요구된다.

나아가 시민들에게 제도적으로 주어진 정치적 제어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민소환을 진행하고, 선거에서 해당 사안을 중심 의제로 만들어내 투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활용해야 한다. 위스콘신의 싸움이 한국의 사회운동에 주는 교훈은 이런 것들이라고 본다.

정치적 무관심과 독자 생존의 보수성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비로소 겨우 근소한 우위를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하다. “완전한 압승의 순간이란 없다. 승리도 패배도 있는 지속적 싸움의 과정이지만, 장기적으로 민중의 의식은 성장한다. 그렇기에 참을성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승리’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모두와 함께 가치 있는 일에 참여했다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1999년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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