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는 왜 스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갔을까 김형민(SBS Biz PD)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기진맥진한 독일군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코네프 장군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제1전선군은 1945년 1월27일 폴란드의 작은 도시 아우슈비츠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공할 현실과 맞닥뜨리게 돼. “사람의 머리카락입니다. 7t 분량입니다. 뼛가루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람의 뼈입니다. 의치와 안경테도, 옷들도 산더미입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악몽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지.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안에 만들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였다. 초반에는 폴란드 정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왜 ‘전문직’이어야 하나 김달아(⟨기자협회보⟩ 기자) 10년 전 기자가 막 됐을 때 직업란에 ‘전문직’이라고 쓰곤 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명쾌한 이유를 대지는 못할 것 같다. 그저 고등학생일 때부터 기자를 꿈꿔온 내 머릿속에 이 직업은 전문직으로 박혀 있었다. 기자가 되는 과정은 ‘언론고시’로 불릴 만큼 바늘구멍이니까, 기자가 되어서도 혹독한 수습 생활을 거쳐야 하니까, 취재와 기사 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니까, 개인이나 회사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해야 하니까.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근거 삼아 전문직이라고 여긴 듯하다.그렇다면 요즘은? 망설임 없이 ‘회사원’으로 적는다. 누구에겐 뉴노멀 누구에겐 임시방편 김다은 기자 당신이 CEO라고 해보자.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재택근무를 하던 직원들을 다시 사무실로 부를 것인가? 언제부터, 어떻게 제안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사무실 복귀를 지시했더니 유능한 사원이 퇴사를 하고, 직원들이 이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다면? 글로벌 기업 애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지난 5월,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주1회 출근을 시작으로 점차적으로 사무실 출근 횟수를 늘리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14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에게서 공개서한을 받았다. 그의 방침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사무실 복귀 지침이 경 “성공하는 일은 당신을 닮았다” 정리·이오성 기자 ‘임팩트 비즈니스’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임팩트)도 창출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차별, 빈곤, 장애, 환경오염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이 나선다? 단순히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임팩트 비즈니스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하는 일이다. 낯선 이야기이지만, 이미 그 경제 규모가 세계적으로 수백조 원에 이른다.‘임팩트스퀘어’ 도현명 대표는 이 분야에서 ‘1세대 활동가(기업가)’로 불릴 만한 사람이다. 10여 년 전부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키 단독 욕심 버리고 협업 욕심 내줬으면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 언론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가끔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문제가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몇 주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단체는 1992년부터 선거보도 감시 연대체를 꾸려 전국선거 때마다 언론보도를 모니터했는데, 시기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문제가 되는 보도 양상도 언론에 요구하는 것도 참 비슷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또 한번 몇 가지 요구를 남겨보려 한다. 키워드는 ‘협업’이다.지방선거를 보름 앞둔 5월17일, SBS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7531명의 전과 데이터를 전수조 전기차 화재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나경희 기자 6월4일 밤 11시, 남해고속도로 서부산 톨게이트에서 사고가 났다. 톨게이트에 진입하던 자동차가 요금소 앞 분리대를 들이받았다. 불과 3초 뒤 차량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15분 만에 초기 진압을 했지만, 자동차는 모두 불탔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숨졌다.불길을 잡은 소방대원들은 자동차 주위를 플라스틱 가벽으로 두른 뒤 물을 쏟아부었다.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 데는 7시간이 걸렸다. 불을 끄는 방식도, 끄는 데 걸린 시간도 일반적인 자동차 화재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해당 차가 전기차(현 판결문이라도 한번 읽어보았을까 오지원 (변호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20개 권고안과 함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쉽게도 다른 조사 결과는 모두 묻히고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점이 주로 부각되었다.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기에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그런데 일부 기사의 내용은 이와 너무 거리가 멀다. 〈조선일보〉는 “3년6개월간 572억 쓰고도…결론 얼버무렸다”, 〈문화일보〉는 “세월호 8년간 9번 조사에도 침몰 원인 못 밝혀…음모론에 떠다닌 세월호”라는 제목 아래 ‘9번의 조사’를 강조하면서 전 정권 전쟁포로를 살린 외침 “양규 장군이 나타났다” 김형민(SBS Biz PD) 우리 역사에 이민족의 침입으로 맞은 ‘위기’라면 차고 넘치게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 이후 한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을지 모르겠다 싶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꼽으라면 아빠는 고려 현종 때 있었던 거란(요나라)의 2차 침입을 들 것 같구나. 이때 거란군을 이끈 것은 거란 최대의 전성기를 일군 성종(聖宗)이었어. 즉 거란 황제의 친정(親征)이지. 친정이란 그만큼 그 나라의 국력을 기울인 총력전을 펼쳤다는 얘기야.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던 북방과 대륙의 황제들, 즉 수 양제, 당 태종, 청 태종 모두 그랬다. 거란 성종 역시 기록상 40만 ‘사교육의 괴수’가 사교육 붕괴를 말하다 정리·이오성 기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스스로를 ‘사교육의 괴수’라고 칭했다. 학벌사회를 무너뜨리려는 단체 ‘교육의봄’의 연단에 서게 된 일을 ‘사교육 괴수와 사교육 킬러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손주은이 누군가. 1990년대 후반 ‘손사탐’이라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사교육 강사. 2000년 이후에는 메가스터디를 창업해 온라인 사교육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대한민국 사교육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그런 이가 교육의봄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속 강연 ‘학벌 없는 채용의 시대가 온다’의 첫 번째 강사로 나서 “앞으로 10년 안에 사교육은 사라질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투명성 보고서, 한국 언론에 적용하면? 오세욱(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매 분기 두 SNS와 관련한 투명성 보고서(transparency reports)를 발행한다. 이 투명성 보고서는 2017년 4분기부터 매 분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정책을 위반한 수치를 항목별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혐오 표현(hate speech)의 경우, 2017년 4분기에는 페이스북 게시물 160만 개가량이 적발됐다. 2021년 2분기에는 3150만 개가 적발돼 공개된 기간 데이터 중 가장 많았으며, 가장 최근인 2022년 1분기에는 혐오 표현 1510만 개가 적발됐다.이렇듯 실제로 54연대 쓰러진 곳에 기억이 남았네 김형민(SBS Biz PD)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던 1862년 9월22일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그런데 이 선언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런 대목에 이르게 돼. “적합한 조건을 갖춘 자는 미군에 입대해 각 요새, 진지 및 기타 부서와 모든 선박에 배치될 수 있음을 알린다. 정의 실현을 위한 확고한 믿음과 헌법에 의해 보증되며 군사적 필요에 따른 이 선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인류의 신중한 판단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미국의 남북전쟁은 애초에 ‘노예해방 전쟁’으로 시작된 게 아니었어. 링컨 대통령 개인은 노예제를 혐오했지만 “노 증인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검사 최정규 (변호사·⟨불량 판결문⟩ 저자) 법조인으로 법원과 검찰을 계속 경험하지만 법조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처음 경험한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법원에서 진행하는 실무수습 기간 중 형사부 판사들과 공판 검사가 함께 모이는 식사 자리였다. 부장판사는 재판 절차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공판 검사를 꾸짖었다. 부장판사는 “이렇게 하시면 예고 없이 무죄판결 선고합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판 검사는 앞으로 잘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이 장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변호사로 형사사건에서 경험하는 공판 검사들의 모습이 매우 불량했기 때문이다. 검찰 기름 범벅 용산공원 이대로 열어도 될까 문상현 기자 서울 용산기지는 가까이 있지만 낯선 공간이다. 100년 넘게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임오군란(1882년)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이 강제로 수용해 군 사령부를 세우는 등 대규모 병영기지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 미군이 이를 그대로 넘겨받았다. 부지 면적만 243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6개 지하철역(녹사평역, 삼각지역, 신용산역, 숙대입구역, 이촌역, 서빙고역)에 둘러싸여 있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다가가지도,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최근 용산기지 일부가 공개됐다. 대통령실(국방부) 건물 ‘스쿨 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이상원 기자 미투(#me too) 운동의 적은 성범죄자들만이 아니었다. 이 운동을 야유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미투 운동이 폭로하는 성폭력 대다수가 기실 ‘실패한 유혹’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유명인이 가해자인 사건에서 이런 목소리는 특히 힘이 실린다. 가해자의 언행을 감내했던 까닭은 순전히 그의 지위 때문이라는 피해자의 말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미투는 ‘기획’이고, 그렇지 않다면 ‘변심’이라고 말한다. 성인지 감수성을 비롯한 사법체제의 변화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긴다. 미투 운동이 ‘떼법’을 불렀 4년의 싸움 94개의 빈칸 주하은 기자 “평소에 계속 그때 생각이 나거나 하진 않아요.” 박소현씨(가명·25)가 말했다. 박씨는 2018년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린 ‘스쿨 미투’ 당사자다. 그가 국어 교사 A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은 2013년 6월께, 서울에 위치한 중앙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는 일상 속에서 항시 피해를 되새기며 살아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가 잊힌 것은 아니었다. 불쾌한 기억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몸 오른쪽에 뭐가 스친다거나 하면 그때 생각이 나긴 해요. 그 사람이 제 오른 어깨 쪽을 만졌거든요.”당시 박소현씨는 물 안전운임제와 시민 안전의 관계 전혜원 기자 화물차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안전운임제’를 계속 시행하라는 이유에서다.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올해 말까지만 효력이 있고 사라질 예정이다(‘일몰’). 안전운임제를 올해 이후에도 계속 시행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기로 하면서 기사들은 일단 8일 만에 파업을 끝냈다. 하지만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아니므로 불씨는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안전운임제 탄생 과정에서 반대한 바 있다. 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안전운임제가 도대체 뭐고 왜 중요한가.운임(運賃)이란 운송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책임 없는 죽음에 엄마는 수방사로 향했다 김영화 기자 강경화씨는 서울 관악구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앞에서 1년째 시위 중이다. 아들의 죽음을 수사했던 수방사 소속 헌병 수사관이 사건을 은폐·축소했다고 주장한다. 수방사 입구에는 강씨가 마련한 근조 화환 10단이 놓여 있다. 매일 담장으로 치워진 근조 화환을 옮기는 것으로 그의 ‘싸움’이 시작된다. 6월13일 오후 5시, “수도방위사령관 김규하는 ○○○(해당 수사관 이름)을 파면하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보초를 서던 헌병이 무전으로 서둘러 보고했다. 지난 1년간 이곳에서 경찰, 군인과 여러 차례 충돌을 빚었다. 막을 수 있었던 두 아이 엄마의 죽음 박성철 (변호사) 범인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강도상해, 특수강도강간과 같은 흉악범죄를 다섯 번이나 저질렀다. 징역형을 네 번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성인이 되고 주로 교도소에 있었다. 마지막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서 전자발찌가 발목에 부착됐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감옥으로 돌아가려 했다. 발찌를 찬 채로 강간 범행을 저질렀다. 집으로 돌아와 체포되기를 기다렸으나 경찰은 오지 않았다. 1차 범죄 13일 후 다시 집 근처에서 2차 범죄를 저질렀다. 강간을 시도하다 격렬히 저항하는 피해자를 끔찍하게 살해했다. 피해자는 네 살, 다섯 살 두 언론 연구자의 제안 “한동안 뉴스 보지 말자” 오세욱(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지난 주말, 원고 마감을 해야 한다는 점도 까먹고 미친 듯이 게임을 했다. 한때 나를 지배했던 〈디아블로〉가 모바일 버전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예상대로 주말은 그대로 사라졌다. 체력이 안 되기 때문에 중간중간 게임을 쉬면서 그동안 못 챙긴 드라마들도 몰아서 봤다.정신을 차려보니 월요일 새벽이었다. 그때 문득 지난 주말 내내 뉴스 한 꼭지도 보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났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언론 전공으로 학위까지 받은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한 글자의 뉴스도 보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나요? 정리·이오성 기자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전 세계 컴퓨터의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를 독점하며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는 2000년 들어 내리막길을 걸었다. 애플, 구글 등 후발 주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모바일 시대에 ‘지는 해’ 취급을 받았다. 그랬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하면서부터다. 하버드 대학 출신이 주름잡았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학벌도 스펙도 변변치 않았던 이 인도 출신 공학자는 빌 게이츠도 하지 못한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위기에 빠졌던 회사를 되살렸다고 평가받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