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드디어 책을 내고 본격 행보에 나섰다. 7월19일 나온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에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부제)에 대한 그의 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안 교수에 대한 기대와 견제가 뒤엉켜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1분에 27권씩 결제가 이뤄지는가 하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찾는 사람이 많은데 책은 없다’며 담당 직원이 짜증을 비칠 정도다(출판사는 책 출간 하루 만에 초판 4만 부가 매진됐다고 밝혔다).


 ‘안철수 정치’의 출발은 오세훈

경제부 기자 출신인 제정임 교수(세명대 저널리즘스쿨)가 묻고 안 교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안 교수는 정치 참여를 고민하게 된 첫 계기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소외계층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하고 한나라당은 주민투표를 만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고, 여론조사를 보니 그런 한나라당 후보가 후임 시장이 될 것 같아 ‘나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들었다”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박원순 후보에게 출마를 양보한 후 ‘지지자들 허탈’ ‘교수 출신의 한계’라는 비판을 들을 거라 각오했는데, 다음 날 오히려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보며 충격과 함께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명익7월20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 〈안철수의 생각〉이 놓여 있다.

 “나쁜 경험은 없는 게 낫다”

안 교수는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인정하면서 “그래서 과연 자격이 있나”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점은 “나쁜 경험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쪽에 찍혀 있다. 그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력 부족에 대해 공격당했을 때 ‘경험에는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이 있다. 나쁜 경험을 오래 하는 것보다 아무런 경험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낫다’고 반박했던 발언을 소개하면서, “저 역시 기성 정치권의 나쁜 경험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 선함과 약함은 다르다

안철수 교수를 보며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맷집이 약해 보인다’는 이유를 든다. 검증과정에서 비판이 집중될 경우 “나 안 해!”라며 때려치울 것 같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인상이 부드럽거나 선해 보이면 약하다고 하는데 선한 것과 약한 것은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굳이 말하면 나는 ‘외유내강형’이다. 약자에게는 따뜻하지만 강한 사람이 부당하게 공격하면 더 세게 맞받아치는 괴팍한 성격이다”라는 주장이다. 


 복지·정의·평화가 3대 가치

안철수 교수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는 산업화 시대 25년은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몰두했고, 민주화 시대 25년은 자유에 대한 갈구로 보냈다면, 앞으로는 불안감 해소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국민이 주거·보육·교육·건강·노후 등 민생의 기본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

ⓒ뉴시스5월30일 안철수 교수가 부산대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에 국가가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하는 ‘복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시장에서의 경쟁은 공정한 기회와 규칙이 보장되는 ‘정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복지와 정의는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복지·정의·평화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라는 얘기다. 


 무상급식 찬성, 의료 민영화 반대

안철수식 복지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전략적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안 교수는 무상급식을 찬성한다. “왜 이건희 회장의 손자까지 공짜밥을 먹여야 하느냐”라는 주장에 대해 “조부모가 그렇게 세금을 많이 냈는데 손자가 그 혜택을 누리는 건 당연하다”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공짜가 아니라 세금으로 받는 혜택이고 이건희 회장의 손자라도 공립학교에 다니면 중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받듯이 급식도 무상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안 교수는 또 △의료 민영화 반대 △아동수당 지원제 신설 △국민연금으로 공공임대주택 건설 지원 △임대차보호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 구체적 정책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재원은 증세와 탈세를 막기 위한 징벌적 벌금제 도입 등을 통해 마련하고, 법인세에 대해서는 전체 세율을 올리기보다 각종 감면제도를 없애 ‘실효세율’을 올리자는 의견이다. 


 경제정의의 핵심은 재벌 개혁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화두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는 야권의 문제의식과 유사하다. 안 교수는 재벌이 지배력을 확대하고 중소기업이 기회를 잃는 과정에서 청년들은 자기 미래를 재벌기업에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기업 입사를 위한 스펙에 목숨을 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진단한다. 재벌체제가 교육·청년문화·일자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부문에 그늘을 만들었기 때문에 재벌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가 기업집단법을 제정해 부당한 내부거래와 편법 상속을 막을 근거를 마련하자고 하는 것이나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비정규직 철폐, 전경련 역할 전환 등을 주장하는 것은 다 이런 맥락이다.

야권의 가장 지지율 높은 주자가 강력한 재벌 개혁 의지를 피력하고 나선 터라 재벌들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리라 보인다. 안 교수는 또 사법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과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북한은 미래의 선물

평화 없이 복지와 정의가 구현될 수 없다고 전제한 안 교수는 “북한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물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활성화하면 정체된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일부 보수파가 가정하는 북한 붕괴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전제로 한 봉쇄정책은 평화만 훼손한다고 본다. 따라서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 같은 상호의존적인 경제협력 사업을 확대하는 등 남북 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핵 개발과 관련해서는 “군사적 위협이 있다고 판단하는 한 북한은 남한이 돈을 주지 않아도 핵개발은 했을 것이다. 남북 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면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 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이름에만 ‘수’가 있던 성적표

복지·정의·평화 말고 안 교수는 ‘문과·이과 통합’ ‘국사·세계사의 필수과목화’ ‘교육방송 콘텐츠 무료화’ 같은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또 작고 어리바리했던 어린 시절과 성적표에 ‘수’라고는 이름인 철‘수’의 ‘수’자만 보였던 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 경비 아저씨에게 ‘똑바로 하라’며 핀잔을 듣기도 하고, “부부싸움을 하면 늘 내가 야단맞고 반성하는 것으로 끝나더라”는 ‘사생활’ 얘기까지, 안철수를 탐구할 만한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안 교수는 앞으로 정치를 하든, 아니면 지식인으로 남든, 이 책에 담긴 생각을 토대로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가고 싶다고 했다. 바야흐로 안철수의 대선 행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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