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현지 시각) BTS 멤버 RM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하이브 제공

왜 방탄소년단(BTS)이었을까. ‘아시아계·하와이원주민·태평양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5월)’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찾은 BTS는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BTS의 전속 무대가 된 그날의 분위기를 전하며 ‘주요 우선순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명인의 힘을 활용한 백악관의 최신 사례’라고 정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권운동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할 당시를 회상하며 “유명 아티스트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북미에 거주하는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BTS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아시아인 민간 외교사절로 본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아시아계 6명을 포함해 8명이 사망한 지난해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BTS가 트위터에 #StopAsianHate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입장문은 2021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리트윗(공유)되었다. 랜디 서 평론가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아시아인 혐오 정서가 심해지는 걸 체감했다. 실제 폭언을 들은 적도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BTS의 발언을 반기는 분위기다. 유명인이 내 인권을 위해 연대한다는 사실, 아시아인이 유력한 자리에서 좌담을 가졌다는 자체에 의미를 둔다. 이전에도 AAHNPI 달을 맞아 아시아계 미국인이 초청받았지만 파급력이 달랐다.”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아시아계 혐오 이슈는 어떻게 백악관의 우선순위가 되었을까.

문화예술계 인사가 아시아인 혐오범죄에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뉴욕타임스〉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그의 언니가 10대 무리에 둘러싸여 ‘칭크(중국인 비하 표현)’라는 말을 듣고 지갑을 빼앗긴 사건, 대학생일 때 중국인 여자가 좋다는 노숙인에게 희롱당한 일, 변호사가 된 뒤에도 아시아인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적절한 접촉을 시도한 동료와 고객의 일화 등 지난 일을 회상한 작가는 남자처럼 입어도 항상 눈에 띄었다며 “내 인종을 집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한국적 얼굴이 전쟁 패배·매춘부·스파이·가난·싼 노동력을 연상시켰다”라는 표현에 그 고충이 집약되어 있다.

지난해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BTS가 트위터에 #StopAsianHate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입장문은 2021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리트윗(공유)되었다. ⓒ하이브 제공

“백인이 미국 내 소수인종 될지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서구 사회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코로나라고 부르며 놀리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지 않는 건 예삿일이다. 침을 뱉고 욕설을 하거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0년 3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미국의 비영리단체 ‘스톱 AAPI 헤이트(아시아인 혐오를 멈춰라)’에 신고된 증오 사건은 1만905건이었다. 피해 대상 중 여성이 61.8%였고 80% 이상은 노인이다. 언어폭력이 63%로 가장 많았으며 신체적 폭행이 16.2%로 그 뒤를 이었다. 사건의 절반이 공공장소에서 발생했다. 신고 당사자로는 중국계 미국인이 42.8%, 한국인이 16.1%로 그다음이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아시아계 혐오범죄가 2019년 161건에서 2020년 279건으로 73% 늘었다고 밝혔다.

소수자 정치를 연구하는 정회옥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BTS의 백악관 스피치가 비가시화되어 있는 아시아인 혐오 현상을 가시화시켜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저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에서 아시아인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짚었다. “얼마 전 한 기자가 아시아인 인종혐오 범죄를 두고 단순강도 사건이 아니냐고 묻더라. 기자가 그런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증오범죄가 가시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가시화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도 없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아시아인 혐오가 실재하고 심각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치적 고려도 있어 보인다. 그의 책에 따르면 10년 동안 미국 내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집단이 아시아인이다(2019년 조사). 10년 새 29%가 늘어 2280만명(전체 인구의 약 6%)이다. 전체 인구에서 백인이 60.1%를 차지해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25년 안에 미국 내 백인이 소수인종이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정 교수는 “히스패닉이나 흑인에 비해 아시아계가 소수인종이긴 해도 증가세가 커서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대다수 흑인처럼 민주당 지지자로 볼 수도 없고 성향이 갈리기 때문에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인 혐오를 멈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집회의 피켓에는 “당신의 모범 소수민족이기를 거부함(Not your model minority)”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흑인이라는 ‘문제적 소수민족’과 갈라치기 위해 등장한 용어가 ‘모범 소수민족’이다. 순종적이고 수학·과학에 뛰어나고 얌전하다는 이미지에 걸맞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되도록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요구받아왔다. 그랬던 당사자들이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급증하자(인종차별이 가시화되자)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

아시아인 혐오의 시작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던 때부터 170년에 이르는, 아시아인 혐오의 역사가 있다. 질병과도 닿아 있었다. 1876년 미국에서 천연두가 유행할 때도 중국 이민자가 유행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1899년 흑사병이 일자 차이나타운이 진원지로 꼽혔다. 19세기 후반엔 황화론이 등장해 아시아인은 ‘더러운 존재(질병)’에서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1970~1980년대 경제위기 당시 일본의 부상과 중국에 대한 공포도 불쏘시개가 됐다. 정 교수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희생양 찾기’라는 역사적 사건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인의 인구 감소는 계속될 터이고 수적 열세 속에서 소수인종을 통한 희생양 찾기 또한 계속될 것이다. 팬데믹이 지나면 당장의 혐오범죄 건수를 줄겠지만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질병은 단기적인 인종차별 촉발 요인일 뿐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텍사스주 댈러스의 미용실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한인 3명이 다쳤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여러 차례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BTS까지 길을 걷다 욕을 듣고, 아시아인이 왜 영어를 쓰냐는 질문을 받는다.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이자 피해 당사자로서 발언한 셈이다. 미국은 유명인의 사회적 발언이 활발한 편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6월7일 영화배우 매슈 매코너헤이가 BTS가 섰던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말했다.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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