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누구보다 만두에 진심인 사람이 있었다 박찬일 (셰프) 찐쩐룽. 그러니까 김진룡 아저씨를 기억에서 끄집어내게 된 건 등기서류 한 장 때문이었다. 발신인은 강원도의 한 세무서 담당 공무원이었다. 그와 내 이름이 나란히 적힌 서류는 당최 해독이 불가능했다.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저 죄송합니다만, 서울 사는 아무개입니다. 이런저런 서류를 받았는데 무슨 뜻인지요?”“아, 기다려봐요. 박찬일씨 맞죠? 서류에 적힌 대로 하시면 됩니다.”그는 마치 세금을 깎아달라고 하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듯한 말투였다.“저는 세금을 안 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지역 세금을 떼어먹은 적은 더더욱 없는 것 [여여한 독서] 삶이 곧 시, 시가 곧 삶이 될 때 김이경(작가) 1991년 6월9일 고정희 시인이 세상을 떴다. 그 어름 아침 신문을 보다가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뱀사골에서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 철렁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울컥했는데, 슬픔보다 배반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었던 것도 생생하다. 1년쯤 지나 유고 시집이 나왔고 책이 집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읽었을 텐데 그에 대해선 딱히 기억이 없다. 부고 기사를 본 그날 아침이 시인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고 나는 그를 잊었다.잊었던 그를 다시 떠올린 것은 국문학자 조연정의 〈여성 시학, 198 왜 죽어가는 개를 억지로 살리려 애쓰냐고요? 정우열(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신장 수치가 조금씩,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이제 슬슬 피하수액을 시작해볼까요?”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씁쓸한 미소는 마치 모든 것이 다 정해진 수순이었고 올 일이 왔을 뿐이라는 의미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그냥 단순히 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수액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온기가 있게. 피부를 이렇게 들어 올려서 삼각형을 만든 다음에, 바늘로 찌른다기보다는 피부를 바늘 쪽으로 가져온다는 느낌으로. 병원에서 주사 놓는 법을 배워서 집에서 놓아주고 있다. 원래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나빠지는 건 신장뿐만이 아니어서 진작 ‘중단’ 그 이상의 BTS 이야기 김영화 기자 ‘케이팝 업계 관계자들이 주의해야 할 영어단어 목록’ 같은 게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hiatus(중단)’가 먼저 추가되지 않을까. 6월14일 방탄소년단(BTS)의 단체 활동 중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이날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멤버들은 “가사를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다(슈가)” “기조의 변화가 확실히 필요한 시점(제이홉)”이라며 개인 활동에 전념할 뜻을 내비쳤다. 데뷔 9주년을 기념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이 맥락이 활동 중단을 뜻하는 hiatus로 요리사여! 그대 팔에 불기름 뒤집어쓸지언정 박찬일 (셰프) 요리사들 모임은 야밤에 시작한다. 손님 다 가고, 결산까지 마쳐야 슬슬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코로나 시절에는 모이지도 못했다. 일 끝나면 전국의 술집도 셧다운이었다. 불 꺼진 식당 탁자에 각자 앉아 제사 지내는 것처럼 ‘깡술’ 한잔씩 놓고 마셨다. 음울할 때였다.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그렇게 요리사들이 모이면 아무거나 먹는다. 밤 10시 넘어 문 연 곳이 요리사 처지엔 맛집이다. 시큼한 땀 냄새 풍기는 사내들 네댓 명이 앉아서 고기를 굽는다. 아마도 서울 청담·논현권 심야 고깃집 손님의 3할은 식당 일 하는 사람들일 거다. 이 ‘매일매일’ 쓰여진 역사 페미니즘 레시피 김이경(작가) 아무의 덕도 보지 않았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홀로 삽질하는가, 한심하고 아득하던 때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지금도 가끔 그런다. 혼자 덤불 속을 헤치는 것 같은 날, 제대로 가고 있나 묻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날, 그만 주저앉아 남 탓이나 하고 싶은 날. 읽히지 않는 책장을 덮고 영화를 봤다. 감독 강유가람이 지난날 여성주의 현장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현재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처음엔 과자를 옆에 끼고 한없이 게으 2년을 묵어 찾아온 나의 아름다운 아침 안희제(작가) 2년 전 가을, 부모님은 극장에 수국 화분을 들고 나타났다. 당시 나는 아픈 몸들이 함께 만드는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시민 배우로 참가하고 있었고, 그날은 연극 이틀 중 첫날이었다. 다른 배우들이 꽃다발을 받을 때, 나는 외목대(외대)로 잘 다듬어진 수국 한 송이가 푸른 꽃잎을 가득 피워낸 화분 하나를 품에 안았다.꽃이 지면 우선 꽃대를 잘라줘야 한다기에 꽃대를 잘라준 이후 수국 화분에는 오랫동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익숙한 형태의 주황색 토분에서 수국은 조용히 잠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1980년대에서 온 ‘기묘한’ 역질주 배순탁 (음악평론가) 이 정도면 역주행이 아니라 ‘역질주’라고 불러야 할 거 같다. 근거를 제시해본다. 이 곡이 발표된 해는 1985년 8월5일이었다. 한데 갑작스러운 열풍과 함께 다시 빌보드 싱글차트 톱10에 진입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으로는 빌보드 싱글 차트 4위다.이유는 다음과 같다. ‘초유명’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 삽입된 덕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이 드라마의 해외 인지도는 엄청나다. 시즌이 공개되면 넷플릭스 순위를 ‘씹어먹는다고’ 보면 된다. 사족이지만 이렇듯 굉장한 〈기묘한 이야기〉보다 더 압도적 새로 나온 책 RFA 자유아시아방송 편집국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레슬리 컨 지음, 황가한 옮김, 열린책들 펴냄“‘도시는 여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와 ‘여자가 있을 곳은 도시다’라는 명제는 둘 다 참이다.”눈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어느 곳을 먼저 제설할까’에는 도시의 권력과 평가가 드러난다. 대부분의 나라는 도로를 먼저 제설한다. 이는 자가용 선호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스톡홀름은 달랐다. ‘성평등적 제설 정책’은 인도, 자전거도로, 버스전용차로, 어린이집 주변을 우선으로 삼는다. 여자·어린이·노인이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마법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김다은 기자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런 것을 묻곤 했다. 나는 늘 ‘순간이동’을 택했다. 8시59분에 침대에서 일어나도 9시엔 교실로 이동. 선생님께 야단을 맞을라치면 미국으로 날아가거나 나쁜 사람을 정의롭게 응징(?)한 뒤 냅다 놀이터로 사라지기.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이 책의 주인공은 빚 300만원 때문에 세상을 하직하기로 마음먹은 마포대교 위에서 “당신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새하얀 원피스 차림을 한 그의 정체가 대단히 의심스러운 순간, 그가 명함을 내민다. [音란서생] 1집보다 좋은 2집, 2집보다 탁월한 3집 배순탁 (음악평론가) 꽤 큰 반응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제는 어엿한 슈퍼스타라 할 수 있을 해리 스타일스 얘기다. 해리 스타일스가 누군가. BTS 등장 전까지 최고 인기 보이 밴드였던 원 디렉션(One Direction)의 멤버였다. 원 디렉션의 성취는 굉장했다. 총 7000만 장 이상을 판매했고, 음반마다 히트 싱글을 여러 장 배출했다. 그중에서도 ‘왓 메익스 유 뷰티풀(What Makes You Beautiful)’ ‘리브 와일 위아 영(Live While We’re Young)’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Story of 오늘 우리가 먹은 것은 이주노동자의 눈물 김영화 기자 깻잎은 ‘시간 싸움’으로 수확된다. 깻잎을 ‘톡’ 뜯어내 열 장씩 포갠 뒤 분홍색 노끈으로 한 묶음을 만들기까지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오래 쥐고 있으면 깻잎이 물러져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그 와중에 깨줄기를 부러뜨리지 않아야 하고, 해충이 퍼지진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한 상자에 들어가는 깻잎은 100묶음. 이런 상자를 1인당 15개씩 채워내는 것이 깻잎밭의 주된 일과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한 상자당 4000원씩 월급을 깎기도 했다. 새벽 6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1만5000장, 이 ‘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새로 나온 책] 왜 정치의 시작과 끝은 항상 양극화일까 RFA 자유아시아방송 편집국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에즈라 클라인 지음, 황성연 옮김, 윌북 펴냄“양극화한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정치 기관들과 정치인들은 더 양극화를 자극한다.”저자는 선택지가 두 개만 주어진 미국 정치 환경에서 상대방을 쉬이 ‘사악한 저쪽’으로 규정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우리 정치도 극단적 양극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양극화를 자극하는 정당, 언론, 소셜미디어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미국의 정치사부터 심리학적 분석을 동원해 어째서 양극화에 빠져드는지, 그룹 활동 중단 BTS의 마지막 메시지, “Stop Asian Hate” 임지영 기자 왜 방탄소년단(BTS)이었을까. ‘아시아계·하와이원주민·태평양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5월)’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찾은 BTS는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BTS의 전속 무대가 된 그날의 분위기를 전하며 ‘주요 우선순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명인의 힘을 활용한 백악관의 최신 사례’라고 정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권운동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할 당시를 회상하며 “유명 아티스트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됐다”라고 [기자의 추천 책] 리추얼이 사라진 시대의 우리 김연희 기자 손에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은 한계 없는 접속을 약속한다. 간단한 터치로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각종 SNS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쏟아지는 데이터 세례에 흥건히 몸을 축일 수 있다.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듯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이라는 제한이 사라진 세계에서 삶은 종종 갈 곳을 잃는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근작을 엮어 지난해 10월 출판된 〈리추얼의 종말〉의 부제는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리추얼은 세계를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 시간 안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거처에 해당한다.” 생텍쥐페 ‘부모에게 알리겠다’ 어떻게 협박이 되었나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N번방’은 수만 명의 가해자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청소년에게 성착취를 일삼았던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사진·영상 촬영을 강제하고 이를 온라인 채팅방에 유료로 유통했다. 문형욱, 조주빈 등 N번방을 만들고 운영해온 이들은 현재 수감된 상태다. 2019년에 알려진 N번방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 때문이다. 영상에는 N번방 가해자들의 범죄 수법과 더불어 범죄행각을 뒤쫓은 기자와 경찰들의 인터뷰가 빼곡하게 실렸다.이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한 주요 루트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벌어진 일 안희제(작가) 레몬 나무의 가지들은 약간 힘을 주면 미세한 먼지가 날리며 건조한 단면이 드러났다. 살아 있을 때처럼 탄성이 있는지 확인하다 보니 남은 가지가 없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레몬 나무에서 연하고 얇은 잎들이 새로 나고 있다. 레몬 잎은 그렇게 작아도 향이 강해서, 살짝만 만져도 손에 레몬 껍질 향이 가득해진다. 비를 잔뜩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아보카도 싹에서도 푸릇푸릇한 잎이 난다.앙상한 가로수에서도 싹이 돋아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직 살아 있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는 한편, 이런 식으로 가지치기를 당하다가는 언제 나무가 명을 달리기 전에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이범준 (아마추어 마라토너·논픽션 작가)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날은 2007년 7월1일, 15년 전이다. 이기지 못하는 술자리가 잦아서인지 체중이 불어 있었다. 달리기와 음식 조절로 1주일에 1㎏씩 뺐고, 가을에 목표 체중이 됐다. 음식 조절은 그만뒀지만 달리기는 그만두지 못했다. 오히려 내 삶과 무관하던 마라톤을 완주했고, 더 먼 거리를 달렸다. 지금은 매일 10㎞씩 한 해 3000~4000㎞를 뛴다.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도 배웠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달리기는 영적 체험이라고 의사이자 마라토너인 조지 쉬언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나의 달리기를 얘기하기 전에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군산 ‘홍집’ 이야기 박찬일 (셰프) 두괄식으로 써야 한다. 이런 설화는.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니까. 아, 요즘 유행하는 기묘한 이야기다. 군산 앞바다 째보선창(죽성포)에 항공모함이 들어온다는 건 믿어도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각시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그런 것이제.”“그럼 각시가 돌아온다면 이 가게를 돌려준다는 말씀인가요?”“그런 것이제.”“장사는 아주머니가 지금까지 하셨잖아요. 권리관계를 따져볼 때 가게를 넘겨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오면 줘야제.”그러고 끝이다. 마치 가게를 잠시 맡게 된 40년 전 어느 날 같 인간 승리는 무슨, 재미있게 달리자 이범준 (아마추어 마라토너·논픽션 작가) 처음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달리기 시작해 3~4년 되던 해이다. 3년째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려고 42㎞를 연습해놓았는데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4년째에 대회에 나가 완주 메달을 받았다. 그래서 3년째인지 4년째인지 애매하다(3년째 대회 기념 셔츠는 조금 입다가 버렸다. 완주자 사칭 같아 꺼림칙했다). 첫 대회에 앞서 세워둔 목표 기록이 있었는데 25㎞쯤 지나면서 어렵다는 걸 알았다. 초반 오버 페이스 때문이었다. 그 탓에 나머지 17㎞도 괴롭게 마치면서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듬해 봄에도, 가을에도 마라 더보기